
| 체르노빌 원전 사고 40주년을 맞아 (2026.04.26) | |
| 조회수 : 151 | 등록일 : 2026-04-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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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RC 연구총서 차용구,『역병 , 전쟁 , 위기의 세계사 』(믹스커피, 2024) 중에서 ----------------------------------------------------------------------------------------------- 핵 재앙 위기가 주는 역사적 교훈 앞에서 2011년 봄 체르노빌 원전 사고 25주년을 맞아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기념행사가 열릴 예정이었다. 사고 피해자들을 애도하는 자선 음악회가 기획되었고, 언론사들은 경쟁적으로 특집 기사를 실었다. 사고가 발생했던 우크라이나에 서도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한 1986년 4월 26일 새벽 1시 26분에 맞춰 추모식을 준비했다. 그러나 기념일을 불과 한 달여 앞두고 일본 후쿠시마에서 대형 원전 사고가 터지면서 추모 행사는 더욱 숙연해지고 분위기도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후쿠시마 참사는 체르노빌과 더불어 인류 역사상 두 번째 7등급 원전 사고였다. 체르노빌 사고 후 25년 만에 아시아에서 유럽에서와 같은 최악의 원자력 재난이 반복된 것이다. 원전 사고는 전 지구적 생존 문제 체르노빌 원전 폭발 사고는 원전의 위험성을 알리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때마침 불어온 편서풍을 타고 유럽 전역으로 흩어진 방 능 구름은 한동안 유럽 전 지역을 공포 속으로 몰아넣었다. 체르노빌은 원전 사고가 비단 한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초국가적 사안이라는 걸 확실하게 인식시키는 첫 번째 사례였다. 1986년 프랑스 방사능 보호 중앙관리소 소장이던 피에르 펠르랭 교수는 공중파 채널 인터뷰에서 “낙진 위험은 원전 센터 근처에 있 는 지역에만 해당한다”라고 장담했다. 프랑스는 방사성 물질 피해로 부터 안전하다는 것이었다. 이에 언론은 “방사능 구름은 프랑스 국 경에서 멈췄다”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25년이 지난 뒤 프랑스의 갑상샘암 환자들이 펠르랭을 집단으로 고소했다. 그는 방사성 강하물에 의한 피폭을 과소평가한 탓에 피해를 더 키웠다는 혐의를 받았다. 80세가 넘은 펠르랭은 이후 10년 동안 재판을 받아야 했고, 결국 법원은 체르노빌 폭발과 고소자들의 암 관련성을 과학적으로 입증 할 수 없다는 판단 아래 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체르노빌 사고 이후 프랑스는 강력한 안전 대책을 마련하면서 오히려 원자력 에너지 개발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정책을 일관되게 펼쳤다. 그 결과 프랑스는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56기의 원자력 발전소를 가동 중이다. 한편 미국에선 체르노빌 원전 사고 이후 본토의 신규 원전 건설이 주춤했지만, 기존의 친원전 정책에는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이와 반대로 독일에선 체르노빌 폭발 직후 반원전·탈원전 논의가 활발하게 일었고, 결국 2023년 4월 16일을 기점으로 독일 내 모 든 원자력 발전의 가동을 중단했다. 체르노빌 사고 이후 37년 만이다. 기술 선진국인 일본조차 후쿠시마 핵 참사를 막지 못한 것에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스위스와 벨 기에도 탈원전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이처럼 세계 각국이 원자력 발전을 놓고 상반된 접근 방식을 취하고 있다. 미국의 스리마일섬(1979), 체르노빌(1986), 후쿠시마(2011) 등 30년 사이에 원전 사고가 세 차례나 발생하자 세계 각국은 서로 다른 원전 대책을 수립한 것이다. 그런데도 원전 사고가 특정 국가에 국한되지 않는 전 지구적 생존의 문제라는 사실에는 이견이 있을 여지가 없다. 방사능은 국경을 따지지 않기 때문이다. 원전 사고에 대응하는 초국가적 협력 원전 사고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려면 각 나라가 공동으로 위기를 관리하는 초국가적 제도를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예를 들면 ‘동아시아 위기관리재난대응센터’를 설립해 주변 국가들이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위기 대응 모의훈련을 하는 것이다. 상호 관심사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협력하면 사태 해결의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서로 다른 두 체제인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맹주였던 미국·영국·소련이 공동의 적인 독일과 일본에 대항 해 싸운 적이 있다. 인류가 당면한 핵 재앙이라는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이념을 넘어선 실리적 국제 협력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초국경적 위기에 초국가적 협업으로 대처하는 기지가 있어야 하 는 것이다. 20세기가 경쟁의 시대였다면 21세기의 화두는 협력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코로나-19 같은 전 지구적 재난은 국가 간 협력과 연대의 중요성을 더욱 일깨운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로 불안감이 커진 지 오래다. 하지만 전 세계의 바다는 이미 오래전부터 핵폐기물로 오염되어 왔다. 미국은 1940년대와 1950년대에 남태평양의 비키니섬에서 수십 차례 핵실험을 했고, 또 다른 핵 강국 프랑스도 폴리네시아의 섬들에서 1960년대부터 30년간 최소 100회 이상 핵실험을 자행했다. 당시 일본 정부는 강력히 항의했다. 옛 소련과 러시아가 동해에 핵폐기물을 버렸을 때도 일본은 앞장서서 이들이 해양을 오염시키고 생태 환경을 파괴한다고 비난했다. 그러던 일본이 이제는 버젓이 원전 오염수를 바다로 방류하고 있다. 원전 사고는 미국·유럽·아시아를 가리지 않고 발생했지만 원자력 에너지 사용을 놓고 여전히 찬반이 분분하다. 국내에선 여러 가지 이유로 원자력 발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원전 강국으로 도약하려는 정책을 추진 중이다. 그렇다고 원전이 알라딘의 요술램프가 될 순 없다. 원자력은 값싸 고효율적인 에너지원이지만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서 보듯 자칫 사고가 날 경우엔 막대한 비용과 희생을 치러야 한다. 더욱이 무색무취의 방사능이 확산되는 특성 때문에 원자력에 대한 두려움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는다. ..................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참사로 우리는 원전 사고가 단순히 한 나라 의 문제가 아니라 전 지구적 재앙임을 인식했다. 원전 사고에는 너 와 내가 없으며 이웃의 불행이 곧 내 불행이라는 걸 기억하자. 역사적으로 원전 사고는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소련·일본 등 원자력 기술 강국이라고 자부했던 나라에서 발생했다. 그래서 더욱 ‘우리의 원전 기술이 세계 최고’라는 자만은 금물이다. 원전 때문에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위험한 불확실성의 시대에 원전 의존도를 단계 적으로 줄이는 다양한 대응 전략이 필요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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