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고도 현실을 보지 못하는 동맹의 딜레마 1914년에 시작된 제1차 세계대전은 4년 동안 군인과 민간인 2천 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고 부상자 수는 2,100만 명에 달한 대참사였다. 천문학적 비용이 들어간 이 전쟁은 삼국협상(프랑스·러시아·영 국)과 삼국동맹(독일·오스트리아-헝가리·이탈리아)이라는 동맹 간 대결로 시작했다. ..... 유럽 현대사 전문가인 영국 케임브리지대 크리스토퍼 클라크 교수의 표현을 따르면,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동맹들은 ‘몽유병 환자’처럼 전쟁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는 유럽 국가들이 동맹의 의무를 이행하느라 동맹 파트너의 분쟁에 말려들면서 집단 ‘난투극’이 벌어졌다고 평가했다. .....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지 꼭 100년이 되던 2014년에 러시아는 흑해의 크림반도를 강제로 병합했다. 헬무트 슈미트 전 독일 총리는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사태로 촉발된 우크라이나 위기를 제1차 세계대전 전야와 비교한 바 있다. 그는 유럽·미국·러시아가 클라크 교수가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을 묘사한 상황과 비슷하게 행동하고 있다고 비난하며 “우리는 또 다시 몽유병 환자가 되어선 안 된다”라고 역설했다.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는 자기 각료들에게 클라크 교수가 쓴 『몽유병자들』을 읽으라고 권했다고 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동맹의 무력 사용에 동참하기보다 외교적 중재를 통한 해결’이라는 독일의 대외정책에 대한 메르켈 전 총리의 의견은 확고했다. 올라프 숄츠 현 독일 총리도 『몽유병자들』을 인용하며 무책임한 정치인들이 호전적인 말투로 분쟁을 촉발한다고 비판했다. 숄츠 총리는 여러 차례에 걸쳐 자신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황제로 전쟁에 개입했던 빌헬름이 되지 않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독일 전현직 총리의 발언은 100년 전 독일이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원하지 않았던 동맹 전쟁에 연루된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다짐처럼 들린다. .... 지난 30년간 중국이 매우 빠른 속도로 성장하면서 미국과의 전략 경쟁이 격화되어 가는 상황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은 대만이 중국의 침공을 받는다면 미국이 군사적으로 개입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결국 한국이 미국의 동맹국으로서 중국과의 분쟁에 연루될 위험성이 점차 높아졌다. 미국이 우리에게 동맹국으로서 대만 문제를 둘러싼 군사작전 참여를 종용한다면 지원 여부와 지원 수위 등을 사전에 검토하는 일이 필요하다. 한미 간 쌍무적·비대칭적·위계적 군사동맹 관계를 고려하면 대한민국은 상당한 연루의 위험을 떠안게 되기에 사전 대비는 더욱 시급하다. 무엇보다도 동맹의 구속력이라는 사슬에 목을 옭아매고 전쟁의 구렁텅이로 끌려 들어가는 몽유병자가 되어선 안 될 일이다." GMRC 연구총서 차용구,『역병 , 전쟁 , 위기의 세계사 』(믹스커피, 2024) 중에서 |